삼국시대의 북방계 투구, 종장판주
미스터 술탄님 블로그의 아바르Avar 족의 투구 관련 포스팅에 트랙백.
본격 아머드 햏자 미스터 술탄™님이 아바르 족의 투구 사진을 올려 주신 바, 이 기회에 여기에 연관되는 투구 형식인 종장판주에 대해서 잠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종장판주란 말 그대로 세로로(종縱) 길다란(장長) 철판(판板)을 엮어서 만든 투구(주胄)를 가리킵니다. 투구 위에 장착된 동그란 복발이 13세기 일본을 침공한 몽골군의 투구와 비슷하다고 해서 몽고발형 투구, 혹은 복발형 투구로 불리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갑옷과 투구가 최초로 확인되는 기원후 4세기 초에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고구려/백제/신라/가야를 막론한 전국의 유적지와 고분에서 50여 개가 넘는 유물1이 출토되고 있는, 말 그대로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투구입니다.
기원
종장판주의 기원에 대해서 딱히 어디라고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형식의 투구가 독일에서부터 시작해서 중국 동북지방을 거쳐 한반도, 일본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넓은 범위에 걸쳐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훈족 등 북방 유목민족들이 처음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학계에서도 종장판주를 대략 북방계 투구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분류
종장판주는 외양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일반 종장판주이고, 또 하나는 투구의 철판이 S자 모양으로 구부러진 만곡종장판주입니다. 기본적으로 만곡종장판주가 일반 종장판주보다 더 화려해 보이는데, 실제로 만곡종장판주는 일반 종장판주에 비해 신분이 높은 무사들(가야 연맹의 영주들, 고구려의 중장기병들...)이 착용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구조
종장판주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지판, 관주管柱 및 복발覆鉢, 볼가리개.
지판(혹은 종장지판)은 투구의 본체가 되는 길다란 철판입니다. 기본적으로 여러 개의 지판에 구멍을 두 개씩 뚫은 뒤에 가죽끈을 꿰어서 연결합니다.(못으로 때려서 연결한 투구가 한 점 남아 있기는 한데 여기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복발은 지판의 윗부분에 얹는 동그란 부속품을 가리킵니다. 보통 철제로 만들어진 유물들이 전하지만, 상당한 수의 투구가 복발이 없는 채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유기질 복발을 장착한 투구도 많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싼 투구를 지급받아야 했던 병사들이 주로 착용했겠죠.
그리고 관대는 복발에 구멍을 뚫고 꽂는 길다란 막대기를 가리킵니다. 위 복발 사진에 뚫린 구멍이 바로 관대를 꽂기 위해 뚫은 구멍입니다. 가야 무사 복원 모형에 묘사된 것처럼 막대기에 이런저런 장식물을 달아서 장식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고대 로마나 그리스의 투구 위에 붙는 장식물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볼가리개는 각각 볼을 보호하기 위해 투구 본체에 다는 부속물을 가리킵니다. 기본적으로 볼가리개는 조그만 쇳조각(소찰小札)을 연결해서 만드는 것이 정석이지만, 신라·가야 지방에서 발견되는 초기의 종장판주들은 철판을 그대로 이어붙여 만든 삼각형의 볼가리개를 장착하기도 합니다. 위의 유물 사진에 나타난 투구들도 이러한 삼각형 모양의 철판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종장판주는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투구이지만, 철판에 못을 박아서 만든 더 튼튼한 투구들이 등장하는 5세기 초반을 기점으로 점점 현역에서 사라져간 것으로 보입니다. 대가야의 중심지인 고령 지산동의 고분2에서 못을 박아 만든 종장판주가 한 점 전하지만, 실전용이라기보다 신분이 높은 무사를 위한 의장용 투구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19세기 영국군의 복장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영국 왕실 근위대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 실전에서 폐기된 방어구가 정치적 권위의 상징물로 남는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입니다.
마지막으로 트랙백한 아바르 족의 투구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자면, 볼가리개와 관주의 길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한국의 종장판주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코 가리개가 한국의 종장판주에 비해서 훨씬 크고 쇠사슬을 엮어 목가리개를 만들었군요. 쇠사슬 갑옷은 고구려에도 있었으니 한국에서도 쇠사슬 목가리개가 장착된 종장판주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술탄님 말씀대로 아바르족 = 유연족인지는 제가 믿을 만한 텍스트를 구해 본 바가 없어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북방 유목 민족을 통한 동서양 방어구의 발전를 보여 주는 유물로 봐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트랙백하신 글 잘 보았습니다. 원본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fectio.org.uk/articles/Avar2.jpg
http://www.fectio.org.uk/articles/Avar1.jpg
이는 로만 아미 토크 포럼에서 위 사이트의 주인이 직접 제시한 것입니다.
아직 해당 사이트의 아티클 부분에서 찾을 수 없으나 데이터는 올라가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 작업중인 Late Roman helmet 부문을 위해 올려둔 사진으로 보입니다.
해당 포럼의 글 주소는 http://www.romanarmy.com/rat/viewtopic.php?t=20289
와아,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좋은 자료 보았습니다 (–)(__)
그럼, 종장판주 형식의 투구가 한반도에 굳어져 조선 대 까지 쓰인건가요?
일단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종장판주 중에서 위에 언급된 5세기 후반의 대가야 종장판주가 가장 늦은 것입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투구가 한 점 남아 있기는 한데 이 투구도 종장판주가 아닙니다.
따라서 종장판주는 삼국시대가 끝나기 전에 완전히 폐기된 것으로 보입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저렇게 비늘을 엮어서 만든 투구와 그냥 철판을 두드려서 만든 일반적인 이미지의 투구하고 비교해보면 종장판주의 비교되는 장점은 뭘까요? 생산비용은 아무래도 후자가 나은것 같고…그럼 적당한 방호력과 유동성을 겸비한점 일까나…?
철판을 두드려서 만드는 투구(고대 그리스의 코린토스식 투구라던가)는 장인의 숙련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비늘을 엮어서 만들면, 장인의 숙련도가 덜 중요해지는 만큼 양산도 가능하고 분업도 쉽죠. 방호력 쪽은 잘 모르겠지만 철판 한 장으로 만드는 쪽이 더 나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