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번 그랬던 것도 아니지만, 블리자드의 게임들은 외부에서 먼저 설레발을 치는 게 관습처럼 되어 있습니다. 최근 쏟아져나오는 뉴스들을 보면, 스타크래프트2(이하 스타2)도 여기서 예외는 아닌 듯 합니다. 벌써부터 8월부터 베타테스트를 할 거라는 둥, 올해 안에는 나올 거라는 둥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스타2가 올해 발매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봅니다. 아니, 오히려 지독하게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발매일 연기를 밥먹듯 하는(...) 블리자드의 습관 때문만은 아닙니다. 스타2의 게임 밸런싱, 엄청 힘들 것 같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 공개된 사항들을 보면요.

지형 활용

스타2는 지금까지 몇 개의 게임 동영상과 50개에 가까운 개발자 Q&A[^1]를 진행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들을 잘 살펴보면, 한 가지 일관성이 보입니다. 바로 지형의 전략적 활용이죠.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난 12월 공개된 배틀 리포트 동영상의 특징은,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형 기물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동영상 58초 ~ 1분 58초 부분에서 이 부분을 설명하고 있네요. 길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는 부수면 지나갈 수 있습니다. 젤 나가의 감시탑은 주위에 있는 유닛들의 시야를 넓혀주는 역할을 하구요. 게임 동영상에도 젤 나가의 감시탑을 이용해서 프로토스의 공격을 알아차리거나 공격받는 확장기지를 구하기 위해 바위를 부수는 장면이 나오네요. 전작에서도 언덕배기에 배치된 공성 전차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스타2에서는 지형 기물이 장애물로서, 혹은 도구로서 더 큰 역할을 맡고 있는 듯 합니다.

고밀도 광물. 일반적인 파란 광물과는 달리 황금색이며, 한 번에 더 많은 자원을 채취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기지를 확장할 때 좀 더 전략적인 선택을 강요한다(Q&A No. 4). 개발진들은 가스 간헐천에 대해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듯 하지만, 이 경우엔 3개의 유닛만이 동시에 작업하기 때문에 광물과는 약간 문제가 다르다(Q&A No. 14).

그 다음으로 주목할 것들은 지형을 무시하는 유닛들의 존재입니다. 프로토스의 거상(Colosus)과 추적자(Stalker), 테란의 강습병(Reaper), 저그의 나이더스 웜(Nydus Worm)이 이런 류의 유닛들이죠. 이들은 까다로운 지형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기 때문에, 적진을 기습하는 용도 등에 활용이 가능합니다. 게임 화면에서도 프로토스의 거상이 절벽을 기어올라가서 테란의 확장기지를 공격하는 장면이 나오네요.

테란의 크루시오 공성 전차.

지형 기물이건 유닛이건, 결국 지금까지의 정보들을 관통하고 있는 테마는 지형입니다. 블리자드가 게임의 컨셉을 뒤엎지 않는 한, 지형은 스타2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 분명합니다. 문제는, 게임 밸런싱에 지형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난이도가 급상승한다는 겁니다. 워크래프트3(이하 워3)때도 그랬거든요.

밸런싱 문제

워3의 초기 유닛 밸런스는 상당히 후덜덜덜한 수준이었습니다만, 유닛만큼이나 시비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맵이었습니다. 워3에서는 영웅이 아이템을 사용해서 유닛들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템은 맵 상에 위치한 상점에서 사거나 몹을 잡아서 얻어야 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버전에 따른 편차는 있었지만, 워3의 초기에 가장 강한 종족은 나이트 엘프였습니다. 가장 많이 했던 맵은 로스트 템플이었구요. 여기서 발생한 문제 중 하나는 투사 병기를 사용하는 유닛들의 공격력을 올려 주는 알레리아의 피리라는 아이템이었는데, 로스트 템플에서 이게 너무 잘 나왔던 겁니다. 나이트 엘프는 초기 유닛 모두가 투사 병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나이트 엘프 플레이어가 이 아이템을 줍게 되면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놓은 격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시비가 벌어질 만 하지요.

결국 드랍률 대폭 축소로 사실상 퇴출.

맵 상에 아이템 상점이 몇 없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초반에 우위를 점한 플레이어가 상대방이 아이템 상점을 이용할 수 없도록 만드는 통에 반전이 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일단 영웅의 레벨을 올린 뒤 힐링 포션 여섯 개 들고 뛰어다니면 상대방은 대책이 없었거든요. 이 문제는 아이템 상점의 위치를 바꿔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워3의 패치 내역에 위치별 아이템 드랍 확률 조정 등의 사항이 자주 들어가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아이템 상점 문제도 결국 확장팩에서 쿨다운 개념도 넣고, 무엇보다 직접 아이템 상점을 건설할 수 있게 해서 그나마 해결이 되었죠.

짓는 데 가격 부담이 적다는 점도 장점.

워3도 밸런싱 난이도가 이 정도였습니다. 그럼 지형의 활용이 전면으로 등장한 스타2의 밸런싱은 어느 정도일까요? 더 어려웠으면 어려웠지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올해 8월부터 스타2의 오픈 베타테스트를 진행한다고 해도 올 연말까지 나오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유닛 밸런싱하기도 힘든 마당에 맵 밸런싱까지 해야 하니까요.

밴쉬, 토르, 시즈탱크로 구성된 테란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거상.

실제로 스타2의 제작진들은 지형 기물이 어떻게 활용될지, 혹은 지형을 무시하는 유닛들에 어떠한 역할을 맡길지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강습병이 만들어지는 장소만 해도 병영Barracks과 용병 기지Merc Haven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다1고 하는군요. 병영에서 생산이 가능할 경우, 좀 더 쉽게 생산이 가능하게 됩니다. 반면 별도 건물이 필요하다면 좀 더 어려워지겠죠.

거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워낙에 키가 큰 유닛이므로 미사일 터렛으로도 공격이가능하다2고 하는데, 정작 이 유닛이 서플라이 디포(Supply Depot)를 넘어다닐 수 있게 할 것인지에대해서는 아직 고민중이라고 합니다.3 사실성을 생각하면 절벽도 넘어다니는 유닛이 테란건물 하나 못 넘는다는 건 웃긴 일이지만, 그렇게 했다가 거상이 너무 강한 유닛이 되어버리면 골치 아파지니까요. 그런가 하면 바위는 특수기술을 이용해서 띄우거나 할 수 없도록 하는 방향으로 개발중이라고 합니다. 무조건 부숴야 한다네요.

추적자의 순간이동(Blink) 능력은 마나를 소비하지 않는 기술(Ability)이기 때문에 쿨다운만 넘어가면 바로 다시 시전할 수 있다.

이런 밸런싱 부담을 덜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일단 유닛 수를 좀 줄인 상태로 밸런스를 맞춰서 출시를 한 다음에, 상황 봐가면서 유닛을 추가하는 방법도 있겠죠. 이미 선례가 있는 방식입니다. 워3의 중립 영웅인 고블린 팅커파이어 로드, 고블린 알케미스트가 이런 식으로 출시되었으니까요. 이 영웅들은 게임의 밸런스가 어느 정도 맞춰진 뒤 패치를 통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스타2의 수석 프로듀서가 인터뷰에서 각 종족의 싱글 캠페인을 별개의 패키지로 발매하고, 그 때마다 새 유닛을 추가하겠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많은 게이머들의 반응은 "돈독 올랐냐?" 였습니다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인터뷰에서는 스토리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렇게 함으로써 밸런스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다는 게 본심일 겁니다.4 스타크래프트의 스토리와 세계관이 훌륭한 건 사실입니다만, 그것 때문에 발매 형식까지 뜯어고친다는 건 납득이 잘 안 가는 일입니다.

올해 발매?

워3는 1999년 9월에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그 때 공개된 스크린샷만 해도 충분히 게임플레이 자체는 가능한 모습었지만, 정작 출시된 건 2002년 7월이었습니다. 그나마 제대로 밸런스가 잡힌 건, 확장팩 Frozen Throne이 나오고 세 번째 패치인가부터였구요. 그 사이 정말 수도 없이 갈아엎었죠. 패치 한 번 나오면 포럼 게시판에 불이 붙을 정도로. 스타2 또한 밸런싱을 제대로 하려면 그에 못지않게 열심히 삽질을 해야 할 겁니다.

결론은 이겁니다: 2010년까지는 걍 마음을 비우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거라는 것. 어차피 때가 되면 어련히 나올 물건이니, 그 사이에 다른 게임이나 즐기는 게 백번 나아 보입니다. 뭘 하던, 가능성도 희박한 출시설 따위에 낚여서 파닥거리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1]: 이 링크에서 전문을 볼 수 있음. 영어.


  1. Q&A No. 24 

  2. Q&A No. 6 

  3. Q&A No. 17 

  4. 여기엔 개발비 문제도 한 몫 한다. 전작을 제작할 때에 비해 게임 개발비가 치솟았기 때문에, 패키지 한 번 덜렁 발매해 가지고서는 그 비용을 대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