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은 내가 "선생님" 이란 말을 주저 없이 붙이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이 더 재미있다.

"주식투자 하시나 봐요?"

존경하는 사람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면 으레 듣는 소리다. 나는 존경하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주저 없이 "시골의사 박경철이요." 라고 대답하는데, 아마도 그런 대답 때문에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수 투자자가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박경철, 혹은 시골의사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듣는다는 사실은 상당히 많은 것을 시사한다.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 그리고 주식 고수가 동경의 대상이 되는 현실 말이다. 무협지에서 고수 검객을 흠모하는 사람이 많은 것하고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무려 토크쇼에도 출연

인간에 대한 통찰

사실, 나는 주식 같은 데 그리 신경을 쓰지 못한다. 경제 기사를 열심히 읽다 보면 꽤 많이 접하게 되지만 거기서 끝이다. 덕질에는 돈이 많이 필요하기에 내가 물질에 욕심이 없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그런 게 지금 내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책 읽고 공부하는 것이 더 돈이 되어서 덕질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박경철이 쓴 책에도 이러지 않던가: "당신은 혹시 조기은퇴가 걱정되어 재테크 강의를 쫓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 시간에 은퇴보다는 임원이 되고 CEO가 되는 꿈을 꾸는 것이 더 가능성이 있다." (, pp.290)

다만 내가 박경철이라는 인물을 존경하고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가 가진 통찰력 때문이다. 혹자는 "주식 투기질 따위에 무슨 놈의 통찰력이냐" 라고 할지 모르지만, 주식 거래도 결국 인간이 하는 것이다. 재화를 사고파는 인간 자체에 대해서 모른다면 저렇게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이미 그의 눈은 이동통신 시대를 예견한 것으로 유명하지 않나. 나는 그가 쓴 글들을 좀 읽은 편인데, 소위 지성인이라 자처하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그만큼 넓은 식견을 지닌 글을 읽은 바가 없다. 이 정도면 그의 통찰력은 인증되었다고 봐도 상관없지 않을까?

세간은 그가 가진 소위 "타짜"로서의 일면에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서 본 적은 세상에 대한 넓은 시각과 인간에 대한 깊은 고민이었다. 투자수익 따위야 오히려 본질에서 뻗어나온 지엽적인 사항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http://me2day.net/gorekun/2009/09/03#11:20:20

달과 손가락

사실 나는 그의 캐릭터보다, 내가 그를 존경한다는 발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더 재미있다. 많은 이들이 시골의사를 이야기하고, 그의 팬을 자처한다. 하지만 그가 주간동아에 서평을 연재했다는 것, 중앙일보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것, 철학과 박사과정을 밟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의 팬조차도 말이다. 이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세간은 주식투자가로서의 박경철에는 관심이 많지만, 지성인으로서의 박경철 혹은 독서가로서의 박경철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시골의사답다는 생각이 드는 이미지.

여태껏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주식투자를 잘 할 수 있나요?" 심지어 답을 구하러 안동에 있는 그의 병원까지 찾아간 사람들도 있었나보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별것 없었다. 여러 번 세상을 보는 통찰력을 주문했을 뿐이다.(*사실 이것이 "매우 별 것" 이긴 한데.)

하지만 그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가 말하는 통찰력을 기르려고 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박경철이 여태 어떻게 통찰력을 길러 왔는지에 대한 질문은 왜 하지 않을까. 그저 그가 쓴 투자론을 읽고, 그가 나오는 Tv 프로만 보면서 열광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쳐다보는 촌극은 비단 부처와 아란존자의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리라.

의미심장한 캐릭터

최근 트위터계에서는 시골의사의 행동이 작은 화제가 됐다. 최근 두산중공업 직원이 중앙대학교 퇴학생을 사찰하다가 발각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트위터리안들이 "트위터 매니아" 박용만 회장에게 여기에 대해 직접 말을 하지 못했다. 이유는 뻔하다. 재벌기업 회장님께 그런 대담한 질문을 날렸다가 어떤 해꼬지를 당할지 두려웠던 거다. 트위터가 소통의 장이네 뭐네 하지만, 그 정도로 담대한 사람은 흔치 않다.

결국 고양이 목에 방울은 단제대로 질문을 던진 것은 시골의사(@chondc)였다. "중대 학생사찰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박용만 회장은 한참을 아무 말이 없다가, "중앙대학교 박범훈 총장이 발표한 것이 팩트입니다."라고 짤막하게 답변했다.

짧은 촌극이었지만,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한국식 경제 구조, 한국식 소통 방식, 한국식 공포 등등... 그리고 저렇게 주변 세상을 오로이 비추는 거울같은 사람도 흔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거울에 나를 비춰보면 어떻게 보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난 듣보잡이잖아? 난 안 될 거야 아마.

ps) 아래는 중앙일보에서 진행한 "시골의사의 직격인터뷰" 중 몇 개를 꼽은 것이다. 이렇게 사람의 내면(inter)을 보여(view)주는 인터뷰를 하기도 쉽지 않다고 생각하여 일독을 권한다. 결코 소녀시대를 직접 만난 것이 부러운 것이 아니다.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 손주은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 소녀시대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 안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