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러들의 막대한 재산은 어디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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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도 제작된 소설
사실 이 사건의 진상은 탐욕스러운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가 템플러들의 재산을 탐내서 일으킨 것이라는 설이 정설이다. 필리프 4세는 1291년과 1311년에 이탈리아 은행가들을 체포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한 바 있으며, 1306년에는 유태인들을 추방하고 그 재산을 몰수하는 등 전력이 매우 화려했다. 그런 그가 1307년 템플러들을 체포하고 그 재산을 몰수하라고 지시1한 것은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닌 셈이었다 - 배운 게 도둑질이었달까.
그러면 템플러들은 대체 얼마나 큰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프랑스 국왕이 탐을 낼 법도 했다. 우리는 흔히 큰 부자를 가리킬 때 "재벌" 이라는 말을 쓰길 좋아한다. 하지만 템플러들을 살펴보면, 재벌이라는 말로는 턱도 없을 정도의 존재라는 걸 알게 된다.
기사 수도회
기사단이라는 조직은 몇 가지 종류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사단은 공식적으로 기사수도회(Military Religious Order)로 불린다. 당시 유럽에서는 수도원 운동이 한창이었고, 기사수도회 또한 그 일환이었던 것이다. 다만 임무가 특별해서, 기도를 하고 설교를 하는 게 본업이 아니라 전쟁을 하는 것이 본업인 것일 뿐이다. 템플러는 대표적인 기사단인 동시에 대표적인 기사수도회였다.
당시 수도원들은 생계를 위해 필경 작업2이나 와인 생산3 등 수익 사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기사수도회는 조금 달랐다. 쓰는 돈의 규모 자체가 일반적인 수도원들과는 달랐던 탓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군대를 유지하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무기를 사고 요새를 건축해야 하며, 이런저런 장비들을 계속 유지 보수해야 한다. 용병이나 대장장이, 군의관 등 전문 인력을 고용하거나 외교·방첩 활동에 쓰이는 비용도 크다. 무엇보다 그 많은 병사들의 식량을 마련해야 한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유럽 전역에서 많은 기부금들이 이들에게 쏟아졌다. 여기에는 "성지를 지키고, 순례자들을 보호하며 이교도와 싸우는 성스러운 전사들" 이라는 이미지가 큰 도움이 된 것은 물론이다. 다른 수도원들에도 기부는 많이 들어왔지만, 템플러나 구호기사단과 같은 기사수도회에 들어오는 기부에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기사수도회들은 유럽 전역에 지부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 지부들은 재산 관리소와 모병 사무소로서의 역할을 겸했다. 기사단의 재산(부동산 등)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돈과 군대, 물자를 준비해서 팔레스타인 성지로 보내는 것이 이들의 일이었다.
종합상사, 여행사, 예금은행, 투자은행...
이런 일련의 작업들에 꼭 필요한 게 있는데, 그건 바로 배다. 군대와 물자를 배에 실어 지중해 너머 팔레스타인 성지로 보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주 쓰이는 것을 쓸 때마다 빌리면 돈이 든다. 차라리 필요한 배를 평소에 보유해 두는 게 좋다.
그런데 일단 배를 사게 되면, 이 비싼 물건을 쓸 때만 쓰고 그냥 놀리는 것은 낭비가 된다. 마침 기사단이 자리잡은 팔레스타인 성지는 동방에서 나는 비단이나 향료 등 이런저런 사치품이 많이 나는 곳이다. 그러니까 이 배를 사서 유럽으로 갈 때마다 이런저런 상품을 유럽에 내다 파는 데 쓰면 큰 돈이 된다. 실제로 종교 기사단은 이런 사업을 했다. 요즘으로 치면 종합상사인 셈이었다.
그렇다면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올 때는? 보통 지부에서 보내는 돈과 신병들을 싣고 오는 게 정석이지만, 비싼 배의 자리를 남기면 역시 낭비니까 성지로 향하는 순례자들도 함께 태워서 온다. 일반 상인의 배는 난파할 수도 있었고, 해적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심지어 성지로 태워 주겠다던 상인이 순례객을 아랍 지역에 노예로 팔아먹는 경우도 잦았다. 하지만 기사단의 배를 타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 기사단의 배는 크고, 운용 노하우도 많으니 더 안전하다. 기사단의 재산을 함께 수송하기 때문에 무장 전투력이 안전하게 지키는 것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명색이 수도회인지라, 순례객들의 알량한 돈을 뺏거나 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역만리에서 아프기라도 할 경우 기사단이 가지고 있는 자선 병원4에서 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순례자들 입장에서는 약간의 사례금을 내고 기사단이 제공하는 "성지 순례 패키지 서비스"를 받는 게 여러 모로 좋은 셈이었다.
당시 순례자들은 성지를 순례한 뒤 잠시 예루살렘 왕국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것은 기사단의 모병에도 도움이 되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기사단은 일종의 여행사 노릇도 하게 되었다. 영화 『Kingdom of Heaven』에서 주인공 일행이 기사단이 모는 배를 타고 성지로 가는 것은 바로 이런 뒷배경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예나 지금이나 여행엔 돈이 든다. 성지 순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큰 돈을 그냥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차라리 기사단에 맡기고 필요할 때 찾아서 쓰는 게 훨씬 안전하다. 기사단은 전 유럽에 걸친 지부 네트워크를 통해 정기적으로 많은 재산을 실어 날랐으니까, 고향에서 송금을 받을 수도 있었다. 안전하고 신용도 있다. 자연히 기사단은 순례자들을 위한 예금이나 송금 서비스도 겸하게 되었다.
기사단들도 이렇게 모인 돈을 그냥 놀릴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든 불리려고 했다. 그래서 기사단은 가진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거나, 현지의 전문 트레이더에게 맡겨 카이로나 바그다드의 금융 시장에서 어음 거래를 했다. 예금은행과 투자은행의 노릇을 동시에 하는 셈이었다. 이렇게 불려진 돈은 이교도들과 싸우는 전쟁 자금으로 들어갔다.
가난한 기사, 부유한 기사단
템플러들을 비롯한 기사 수도회들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 있다. "가난한 기사들(Poor Knights)"이라는 말이다. 기사단에 소속된 기사들이 청빈의 계율을 지키며 검소한 생활을 한다는 점5에서 이 말은 맞다. 하지만 기사단이라는 조직에 초점을 맞추면, 상황이 좀 달라진다. 기사단은 대개 부자였다. 그 중에서도 큰 기사단들6은 정말로 무지막지한 부자였다. 지금으로 치면 종교 교단에 종합 상사에 운수기업, 예금은행, 투자은행 등을 몽땅 거느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통일교 같은 부자 교단이나 삼성 같은 거대 재벌도 이 모든 걸 다 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거대한 부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템플러들은 종교적 색채를 띠긴 했지만 당대 최고의 정예 전투력이었고, 이렇게 재산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에도 문학이나 영화, 게임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음모론의 소재가 되는 일도 잦았다. "템플러들의 막대한 재산들 중 찾아낸 것은 얼마 안되었고, 대부분은 아직도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 는 식이다. 다빈치 코드에 등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 Helen Nicholson & Wayne Reynolds, Knight Templar 1120-1312, Osprey, 2004
- Desmond Seward, Monks of War, Penguin,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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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템플러들은 예루살렘 왕국의 멸망으로 인해 프랑스로 쫓겨 와 있는 상태였고, 전쟁에서 진 그들에 대한 여론도 안 좋은 상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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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인쇄술이 없었기 때문에, 책은 하나하나 베껴서 만들어야 했다. 이것은 수도사들에 대한 교육도 되었고, 고행에 가까운 일이었던 만큼 그 자체가 수행의 일부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런 방식으로 기도서 등 필요한 책을 만들 수도 있었기 때문에 여러 모로 수도원들에게 걸맞는 일이었고, 자연히 이러한 작업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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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많은 와인들이 수도원에서 생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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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러들과 함께 예루살렘 왕국의 양대 기사단이었던 구호 기사단Hospitaller은 본래 성지 순례자들을 위한 자선 병원이었다. 이들이 구호기사단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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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럽 기사계급의 자제에게 있어서는 "사유재산을 포기하고 옷이든 갑옷이든 주는 대로 써야 하는 조직에 들어가 생활한다" 는 것 자체가 청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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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중세 3대 기사단으로는 템플러Templar, 구호기사단Hospitaller, 튜튼기사단Teutonic Order을 꼽는다. ↩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이렇게 오덕스러운 글에… 감사합니다. (–)(__)
물론 형제애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검열삭제]로 더욱 유명한…..^^
그런데 그게 템플러 재판에서 뒤집어씌워진 누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군요.
무역회사, 해운회사, 병원, 은행, 투자신탁에 더해서 군대도 있었으니 아예 나라라고 봐도 될 정도죠. 여기서 영감을 얻은건지는 모르겠는데, SF에서 많이 등장하는 ‘기업국가’ 개념하고도 비슷하지 않나요?ㅋ
몰타 기사단은 지금도 존재하며, 영토만 없다 할 뿐이지, 우표도 발행하고, 자국 선박도 있고, 자동차 번호판도 가지고있는 주권국가입니다.
예, SF의 기업국가가 템플기사단을 모델로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비슷한 면이 없지 않지요. 사실 대규모 폭력시스템과 그걸 유지하기 위한 자금 조달 시스템이 있다면 국가와 다를 바 없으니까요. 지금도 남미의 마약 마피아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다빈치 코드 재밌게 봤는데 이런 배경이 있었군요.
아주 흥미롭게 봤습니다. ㅎㅎ
하하, 감사합니다 ^_^
돈 만지는 방법을 좀 일찍 깨닳았달까?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가나 꼭 한둘 씩은 있죠, 돈 흐르는 강에 도랑 만들 줄 아는 사람들 말이죠.
결국 그것 때문에 줄초상이 나기야 했습니다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