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 가토 기요마사의 도시
적은 구마모토 성 앞에 있었다.
어느 여름날 아침, 우리는 그와 대면했다.
2010년 8월 18일
일본 규슈(九州) - 구마모토 시
적장은 자신이 쌓은 성 앞에 앉아 있었다. 특유의 투구를 쓰고, 지휘봉을 들고 있었다. 호랑이 사냥꾼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제 2군단의 지휘를 맡아 조선을 침공한 왜장.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나쁜 놈"일 뿐이지만, 가토 기요마사는 일본에서는 손꼽히는 명장 중 한 사람이다. 오와리1 나카무라 촌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휘하에 들어갔고, 각지에서 뛰어난 무공을 세워 구마모토 시의 지배자가 됐다. 1588년의 일이다. 이런 빠른 출세에는 히데요시의 인척이라는 점도 한 몫 했지만, 무엇보다 그가 빼어난 용맹을 지닌 뛰어난 지휘관이자 유능한 행정가라는 점이 주 이유로 작용했다.2
역사적으로 구마모토 성이라 불린 성은 여럿 있었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인 만큼 이곳 저곳에 지배자들의 성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성은 1600년, 이웃 우토(宇土)시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물리친 가토 기요마사가 쌓은 성으로 근세의 구마모토 성이라고 불린다.
1601년부터 7년에 걸쳐 축성된 이 성은 자우스 산이 가진 동고서저의 지형을 잘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 조선 곳곳에서 전투를 치러 온 가토 기요마사의 노하우가 잘 활용되어, 단연 일본 최고의 성으로 손꼽힌다. 전성기에는 성루 49개소와 성루문 18개소, 성문 29개소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그 절반도 안 된다.
흔히 히메지성, 나고야성, 구마모토 성을 일본의 3대 명성으로 꼽는다. 그 중에서도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은 단연 "학의 성"으로 불리는 히메지성이다. 모습도 아름다울 뿐더러 옛 성이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은 예쁘게 보이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위해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실전을 겪어 본 적 없는 히메지 성은 아쉬운 점이 많다.
반면 구마모토 성은 히메지 성처럼 예쁘고 깔끔한 맛은 없다. 하지만 성에 발을 들이면 묵직한 분위기부터가 히메지 성의 아기자기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장식물이 아니라, 당당히 내게 맡겨진 본분을 해냈다 - 성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 1877년, 구마모토 성을 수비하던 일본 정부군은 성을 에워싼 사이고 다카모리의 반란군에 맞서 싸웠고 결국 성을 지켜냈다. 대포알을 한껏 두들겨맞은 성은 만신창이가 다 되었지만, 일본 최강의 성이라는 명성이 과연 허언이 아님을 증명했다.
기요마사의 지배는 오래가지 않았다. 4년 뒤 기요마사가 죽으면서 구마모토는 그 아들 다다히로(加藤忠広)가 이어받았지만, 오래지 않아 막부에 의해 쫓겨났다. 뒤를 이은 것은 호소카와 타다오키(細川忠興)의 아들 호소카와 타다토시(細川忠利)였다. 이후 구마모토는 메이지 신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호소카와 집안의 지배를 받는다. 하지만 거리를 누비는 내내 도시 한복판에 자리잡은 성의 무게를 느끼던 나는, 기요마사는 아직도 구마모토의 영주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구마모토를 떠나면서 뒤를 되돌아봤다. 비오는 규슈의 하늘 아래 거대한 천수각이 앉아 있었다. 위엄을 갖추고 당당히 서 있는 성을 보자니, 저 성은 건축물이라기보다 기요마사의 분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저 거대한 적장에 맞서 싸우던 조선의 의병장들도 필시 만만치 않은 자들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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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아이치 현 서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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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기요마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발해지랑 님이 쓰신 글을 추천. ↩
그놈의 매독 크리
그나저나, 성이 참 예쁘네요.
1. 매독 때문에 죽었다는 설이 정설입니다만 독살설도 무시 못하죠.
2. 예, 도라버리게스 님도 한 번 가보시면 후회 안 하실 겁니다. 정말 괘찮더군요.
풍부한 사진과 여행기 잘 보았습니다.
히고 번에는 키요마사가 대막부(對幕府) 용으로 설치한 시설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그 덕분인지 카토우 히고 번[加藤肥後藩]은 2대로 단절. 그 다음이 에도에 인질로 가 어렸을 적부터 이에야스 짱이라는 영재교육(이라 읽고 세뇌라 읽습죠)을 받은 호소카와 타다토시. 막부도 제법 다이묘우 배치가 뛰어난 것 같습니다.
멋진 트랙백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제 번역글로 링크 해셔서 고맙습니다. ^^
ps;石垣를 ‘석벽’으로 하셨군요. 저는 저것을 우리 말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항상 고민이 있습니다. 제가 성(城) 같은 것엔 무지에 가깝고, 우리 나라 군사사에도 무지한지라 저 石垣와 치환되는 단어가 궁금했거든요. 石垣를 ‘석벽’ 쓰면 되는 것인가요?
뭐랄까, 막부가 다이묘를 컨트롤 하는 걸 보면 “컨트롤 쩐다” 라는 말을 안 할 수가 없더군요. 하기야 그런 “너구리” 같은 일면이 있으니까 미카와 작은 영주에서 전국 통일까지 한 게 아니겠습니까. 기요마사의 동료 후쿠시마 마사노리도 할복시켰고…
그리고 ‘석벽’ 에 대해서는… 저도 성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그냥 통용되는 말을 썼을 뿐입니다. 큰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거성’ 이나 ‘도노’, ‘군역금’ 같은 데서도 보이지만, 많은 일본 단어가 완전한 번역어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애당초 개념 자체가 한국에 없으니…)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성이 참 예쁘네요(2). 그런데 은행나무와 전쟁 대비는 무슨 상관이 있나요?
성이 포위되어 먹을 게 없어지면 은행알을 볶아 먹는 거죠.
아~ 전차에로의 로망
규슈 가면 전차놀이 하나는 확실히 할 수 있더군요 :)
식량과 물은 충분하다해도 무기가 다떨어지면 어떻게했을까요, 평소에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드는것에대해 생각하고 다니는 본인은 식량과 물을 해결할수있는 법은 생각해냈지만 무기의 고갈은…(그것보다 당신 평소에 그런거 생각하고 다니는게 이상한거야)
무기는 평소에 만들어서 창고에 넣어 두면 되죠. 식량에 비하면 그리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