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으로는 도쿄보다 훨씬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훨씬 멀게 느껴졌던

어느 도시에서의 하루.

2010년 8월 15일
일본 규슈(九州) - 가고시마(鹿児島)현, 가고시마 시

1.

그것은 "자존심"이었다. 조기를 게양한 파출소. 가고시마 역에서 내려 처음으로 본 것이었다. 한국의 광복절, 일본의 패전일 - 우리와는 다르게 걸려진 일장기를 마주치니, 새삼 잊고 있던 역사적 악연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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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 역 앞 파출소.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내가 형과 함께 방문한 가고시마 시는 규슈 최남단에 위치한 가고시마 현의 중심지다. 아직 일본이 봉건 영주들의 지배를 받던 시절, 규슈 남단의 소국 사쓰마(薩摩)오오스미(大隅)는 오랜 귀족 가문인 시마즈(島津) 집안의 지배를 받았다. 지금의 가고시마 현은 메이지 유신 이후, 사쓰마와 오오스미가 합쳐져서 탄생한 행정 구역이다. 하지만 엄연히 시마즈 집안의 본거지는 서쪽 사쓰마였던 만큼, 사쓰마라는 이름은 사실상 가고시마의 옛 이름이라고 해도 좋다.

19세기 말, 사쓰마는 조슈(長州, 지금의 야마구치山口 현)과 함께 막번 체제를 붕괴시키고 메이지 유신을 이끈 주역이었다. 이후에도 일본 제국이 패망할 때까지 일본 정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국가 발전을 위해 문명 개화에 힘썼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지만, 다른 한면으로는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아시아 각국을 침략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어두운 면도 가지고 있는 게 이 동네다. 예를 들어, 1876년 조선을 강제로 개항시키고 훗날 수상까지 지낸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清隆)가 바로 이 지역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일본 제국의 패망은 그들에게는 더욱 각별한 느낌 - 더할 나위 없는 굴욕 - 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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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의 명물, 흑돼지. 사진은 흑돼지 히레까스다. 보통 히레까스와는 달리 뚜렷한 지방층이 있는데(사진의 반대편), 이 부분이 달짝지근해서 굉장히 맛있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2.

어쨌든 배경이 이런 동네니, 관광이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을 수밖에 없다. 역에 비치되어 있던 관광 안내서에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추억이 서린 어디가 어쩌고 하고 있으니 더 설명이 필요한가? 작은 호텔1에서 하룻밤을 보낸 우리는 다음 날 관광을 시작했다. 쉽게 말해, 가고시마는 메이지 유신 테마파크였다.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의 동상이 곳곳에 서 있는 건 물론이고, 그들의 작은 흔적까지 하나하나 보존하고 있었다. 지금의 일본을 만든 것은, 바로 우리다 - 길바닥에 깔린 보도블럭 하나하나에까지 가고시마 사람들 특유의 자존심이 듬뿍 묻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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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공원에 세워진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동상. 일본 최초의 육군대장 군복을 입고 있다.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으로 유명해진 사람이라 우리 입장에서는 기분 좋은 인물이 아니지만, 가고시마에서는 최고의 영웅이다. 기념품점마다 사이고 다카모리 인형을 팔고 있었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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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난 전쟁 당시 사이고 다카모리의 사령부가 있던 자리. 메이지 정부를 주도하던 오오쿠보 도시미치와 갈등하던 사이고는 결국 사쓰마의 군대를 이끌고 중앙정부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지만, 패하고 이 자리에서 할복 자살했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3.

역사적인 악연 뿐일까? 가고시마는 다른 면에서도 우리나라와 지극히 이질적인 곳이다. 이 지역은 근대 일본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900년간 시마즈 집안의 지배를 받았다. 긴 세월도 세월이지만, 서울에서 내려보낸 원님의 통치를 받는 게 일상이던 우리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경험이다.

가고시마, 사이고 다카모리의 도시

시마즈 집안의 영주들이 살던 츠루마루 성. 일본의 다른 성들과는 달리 천수각이 없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가고시마의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우리는 시마즈 집안의 문장 - 마루니쥬노지 문양을 수도 없이 볼 수 있었다. 관광지나 기념품점은 물론이고 심지어 우동집, 선술집에까지 이르기까지 말이다. 시마즈라는 이름 자체가 가고시마 지역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오랜 영주 집안에 대해 그들이 갖는 감정은 오랜 중앙 집권 국가에서 살아 온 한국 사람으로서는 가늠키 힘든 그 무엇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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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 역에 있던 우동집. 원 안에 열 십자가 그려진 마루니쥬노지(丸に十字) 문양이 새겨져 있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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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 저택. 시마즈 집안의 정원인 센간엔에 있다. 이 저택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고, 안내인 가이드를 따라 한 번에 한정된 수의 사람들만 입장시킨다. 다소곳이 기모노를 차려 입고 역대 영주들에 대한 설명을 해주던 가이드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자부심과 자존심이 우러나왔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4.

몇년 전, 처음으로 일본에 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던 나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한국에 없는 많은 것들을 보았지만, 결코 이질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른 것도 많았지만 비슷한 것도 많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도쿄나 교토는 한 나라의 수도라는 점에서, 서울이나 경주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내가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던 데는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고시마에서 보낸 하루는 그런 이미지를 완전히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가고시마와 우리 사이에 얽힌 기나긴 악연과 너무나도 다른 역사적 경험 때문이었다. 이곳이 우리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이국이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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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코가미 신사. 시마즈 집안의 당주 시마즈 요시히로가 임진왜란에 참전할 때 데리고 갔던 고양이들을 신으로 모신 신사다. 요시히로는 전라북도 남원에서 심당길 등의 조선 도공들을 납치해 가기도 했으니, 가고시마와 한국의 악연은 정말 길고 끈질긴 역사를 가진 셈이다. (출처: 개인 촬영. flickr@gorekun)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실감한 하루였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흑돼지로 만든 먹거리를 약간 산 우리는, 신칸센을 타고 아소로 향했다.


  1. 이 호텔도 메이지 시대 일본 수상을 지낸 오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의 동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프록코트를 휘날리는 게 꽤 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