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경험이라고 부르는 건 대부분 실수를 말하죠.

A Good Woman(2004)

1.

일기예보는 왜 자주 틀릴까?

좀 뜬금 없지만, 이 문제는 인간 추론 능력의 한계를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사고 방식이란 "선형적(linear)" 이다. 원인과 거기에 따른 결과, 이것들의 연속 혹은 집합. 이런 틀을 가지고 추론을 수행한다. 적어도 이런 모델 아래서는, 그 과정이 극도로 복잡하거나 결과가 다시 원인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하는 일은 잘 없다.

인간의 사고 방식: 의외로 단순.

하지만 일기 예보의 대상 - 지구의 기상 시스템은 저런 식으로 만들어져 있지 않다. 시스템이란 "임의의 목적을 위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상호작용하는 부분들의 집합체" 를 가리킨다. 즉, 기압에 따라 바람이 불기도 하지만, 바람이나 지형이 다시 기압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게 한두 개도 아니고 수십~수백 개가 얽히고 설켜서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아래 그림). 이런 걸 소위 비선형적(nonlinear)이라고 부르는데, 이 정도에 이르면 단편적인 인과관계 따위는 그 의미를 잃게 된다. 베이징에 나비가 있냐 없냐 때문에 워싱턴에 폭풍이 몰아치냐 안몰아치냐가 결정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현실: 말 그대로 시궁창(-_-).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추론 능력은 비선형적인 사건을 잘 다루지 못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이런 경우가 많은 것도 아니고, 거의 전부 다다. 일기예보의 경우에도 열심히 이것저것 자료를 모아서 예측을 하려고 하지만, 그 복잡한 자연계의 모든 요소(factor)들을 다 담을 수는 없다. 아무리 좋은 슈퍼컴퓨터를 써도 장기 일기예보가 힘든 이유다. 그나마 우리나라의 우기여름철같이 지독히도 복잡한 상황이 벌어지면, 단기 일기 예보도 전혀 안 맞는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선형적 사고 따위 비선형적 현실 속에서는 의미를 잃는 것1이다.

2.

내가 실패담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성공담은 무엇인가? 쉽게 말해 "아무개가 이러저러해서 성공했다." 는 얘기다. 선형적인 판단인 것이다. 즉, 이 아래에는 "아무개가 가진 일정한 요인들을 통해 결과를 설명할 수 있다." 는 선형적인 믿음이 깔려 있다. 하지만 현실이 전혀 선형적으로 안 생겨먹었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성공담의 대부분은 그 자체로 "사실"이라기보다 사후적 "해석"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결과를 보고 원인을 상상해서 끼워 맞춘 거라는 얘기2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성공담에 도취되면 안습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속출한다. PlayStation의 아버지 쿠다라기 켄(久夛良木健)이 PS3를 출시하면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는가? "PS3야말로 유일한 차세대 게임기입니다. 블루레이, HDMI 출력, 고해상도 그래픽 장치를 탑재하고 있죠." 하지만 정작 시장에서 성공한 것은 후줄근한 그래픽의 닌텐도 wii였다. PS3는 xBox360한테도 발렸고 심지어 PS3로 처음 출시된 『건담무쌍』은 하도 안 팔려서 PS2로 다운그레이드해서 재출시되는 굴욕을 당했다.

쿠다라기 전 회장은 DVD의 탑재가 PS2의 대성공에 한 요인이 되었다는 것에 크게 고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실제로 그는 3D 그래픽 엔지니어 출신이다.). 하지만 블루레이는 DVD처럼 완전한 표준도 아니었고(아직 HD DVD와 경쟁중이었다.), 고해상도 그래픽에 대한 수요가 DVD 때만큼 크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폭등하는 개발비 등의 문제에는 별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쿠다라기 켄 같은 희대의 천재도 성공담에 도취되어 삽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다 실수한 거라고? 그렇다면 지금 당장 블로고스피어를 검색해서 Android가 처음 출시됐을 때 IT블로그들의 반응을 보길 바란다. IBM이 PC시장의 패권을 쥐었듯 Android도 모바일 시장의 패권을 쥘 거라는 내용 일색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러하던가? 아직도 Android 폰은 iPhone 제품군과 수적으로는 비등비등하고, 질적으로는 오히려 밀리는 상황이다. "개방 = 성공" 이라는 IBM의 성공담이 많은 이들의 눈을 가렸던 것이다.

3.

이쯤 되고 보면 성공담이 가진 한계가 분명해진다. 성공담은 재미있지만, 대부분 사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결과에 영향을 미친 수많은 요인들을 은폐함으로써 진실을 왜곡하고 정확한 판단을 가로막는다. 그 자리에 남는 건 별 도움도 안 되는 원시적 영웅담, 그 뿐이다.

그럼 실패담은? 물론 실패 중에서도 머피의 법칙급으로 일이 꼬이고 꼬여서 발생하는 비선형적인 실패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온갖 변수가 넘치는 성공의 과정에 비하면 대부분의 실패는 훨씬 단순하고 원인도 명확하다. 뒤집어 말하면, 그걸 알고 있으면 최소한 똑같은 실수만은 피할 가능성이 높다. 더 좋은 점은 실패한 당사자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여간해서는 잘 보이지 않는 중요한 요소들을 오히려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작 중요한 정보는 실패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4.

인터넷 상에 넘치는 스티브 잡스에 대한 글들을 읽다가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apple의 의사 결정 구조가 잡스를 중심으로 강력하게 중앙 집중화된 조직 구조라는 것, 잡스는 아이폰 출시 전날 폰에 탑재된 아이콘이 잘못 된 것을 지적할 정도로 세밀하고 꼼꼼한 리더라는 것 등의 내용들이었다.

내가 실패담을 더 좋아하는 이유

WWDC 2007에서의 잡스. (출처: flickr@acaben)

나도 잡스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식으로 애플의 성공을 설명하려는 건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다. 그 강력하게 중앙 집중화된 조직 구조의 대표주자가 누구인지 아는가? 바로 IMF때 접시물에 코박은 80년대 재벌 기업들이었다. 그리고 디테일한 사안까지 가장 잘 챙기는 리더가 어디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취임하자마자 전봇대 뽑고 톨게이트 인력 조정한 이과장청와대 그 양반을 떠올리시길 바란다. 대체로 그게 안 좋다는 거, 다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성공담이 현실의 다양한 요소들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그런 걸 다 고려해서 분석할 수는 없을까? 안됐지만 그것도 힘들 것 같다. apple이 지금까지 걸어 온 길에 영향을 미친 모든 요소들? 이건 아마 잡스도 모를 거다. 대량의 객관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행하는 일기 예보도 틀리기 일쑤다. 이 문제의 경우, 복잡하기는 일기 예보 뺨치고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는 더 적다. 그런데 분석이 가능할 것 같은가?

5.

성공담이 인기가 있는 것은 아마도 읽는 이가 거기에 감정이입해서 대리 만족을 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걸 진지하게 읽을 바에야 차라리 재벌 2세 따귀 날리고 연애질하는 드라마(...)를 보는 게 더 유익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환호나 열광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종합적이고도 냉철한 판단이다. 그리고 거기엔 대체로 실패담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준다. 성공담 따위에 도취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1. 선형적인 사고가 효과를 보일 수 있는 곳은 실험실처럼 주위 환경이 잘 통제된 상황 정도다. 그나마 이 경우도 오차가 자주 발생한다. 

  2. 여기에 대해서는 유정식님의 블로그에 실린 두 편의 글([1], [2])이 잘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