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 장비에서 주력 장비로, 배서닛(Bascinet) (1)
예전에 13세기를 풍미한 투구인 Great Helm에 대해서 알아봤으니, 이번엔 14세기 중반 이후의 주인공이 된 투구, 배서닛을 소개하겠습니다.
등장
13세기를 풍미한 그레이트 헬름은 매우 강력한 방어력을 지닌 투구였습니다. 하지만 이 투구에는 문제가 둘 있었습니다. 하나는 지나치게 크고 무겁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착용자의 시야와 호흡이 심각하게 제한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둘은 물론, 그레이트 헬름의 장점이자 특징인 양철 바께쓰"온 얼굴을 완전히 감싸는 디자인"에서 온 것입니다.
앞선 포스트에서 그레이트 헬름은 크게 얼굴 앞 장갑판이 장착되는 전기 - 목 방어판이 추가되는 중기 - 정수리/얼굴 상단/얼굴 하단의 3단 구조가 정립되는 후기의 세 시기로 나누어 진화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중기까지만 해도 그레이트 헬름을 착용하는 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후기형부터는 투구의 크기와 무게가 굉장히 커졌기 때문에, 이걸 계속 쓰고 전투를 치르는 것은 힘든 일이 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14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그레이트 헬름의 하단에 구멍을 뚫은 뒤 쇠사슬로 투구와 갑옷을 연결하는 방식이 등장했습니다. 이 쇠사슬을 가드 체인[Guard Chain]이라고 하는데요, 이렇게 하면 전투가 치열하지 않을 때는 투구를 벗어 놓았다가, 본격적인 육박전이 벌어지기 직전에 편리하게 착용할 수가 있었습니다.
앞서 10세기~13세기의 갑옷에 대한 글에서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당시의 갑옷은 쇠사슬로 만들어진 후드 티 모양의 갑옷을 머리까지 뒤집어쓰는 형태였습니다. 그레이트 헬름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정수리 부분[coif] 아래에 작은 천 모자를 받쳐 씀으로써 그레이트 헬름의 무게를 완화시켰지요. 이후 가드 체인이 등장하고 그레이트 헬름을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게 되자, 아예 코이프의 끄트머리를 잘라내고 이 자리에 Cervelliere이라 불리는 작은 철제 모자를 고정시키는 방식1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그레이트 헬름을 벗어 놓은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 방어력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여전히 문제가 있었습니다. 정수리 부분에 갑자기 이런 묵직한 걸 달아 놓으니 갑옷을 입기가 영 불편해졌던 것이죠. 결국 1330년에 이르면 얼굴을 둘러싼 쇠사슬 코이프와 정수리를 방어하는 철제 모자 부분이 어엿한 별도의 투구로 분리되게 됩니다 - 이렇게 하면, 갑옷을 입은 다음 투구를 따로 쓰면 되거든요. 이것이 바로 배서닛[Bascinet]이며, 14세기 말~15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전장을 지배한 투구인 것입니다.
보조 방어구에서 독립된 투구로
이렇게 독립된 투구로서 배서닛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안정된 형식으로서 정립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습니다. 모든 공업 생산품이 그렇듯이, 처음 만들 때는 제대로 만드는 방법을 잘 모르거든요. 현존하는 배서닛 유물들을 살펴보면 배서닛이 처음 등장한 1330년대부터 약 20년간은 정수리 부분을 만드는 데 적어도 3가지 양식이 동시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2.
- 목 위를 전부 덮는 원뿔 형태.
- 귀 위에서부터 덮는 작고 동글동글한 형태.
- 귀 아래 부분부터 덮는 원뿔 형태.
이런 과도기적 투구가 제대로 된 방어력을 낼 수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에, 이 시기까지 여전히 그레이트 헬름은 여전히 표준 장비로서의 자리를 고수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만들어진 기사의 무덤 장식을 보면, 머리에 배서닛을 착용하고 있으면서도 발 밑이나 머리 아래에 그레이트 헬름을 놓은 채로 누워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다. 아직 배서닛은 "그레이트 헬름 안에 받쳐 쓰는 보조 투구" 혹은 "본격적인 육박전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단독으로 쓰이는 투구" 정도의 위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1350년대 이후 형태가 안정적으로 정립되고 생산 방식 역시 발달하면서 배서닛은 독자적으로 충분한 방어력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배서닛이 크고 거추장스러운 그레이트 헬름을 밀어내고 표준적 장비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 것 또한 이 시기부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