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계 취업난 “문사철입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ㅍㅍㅅㅅ, 2013.10.21)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실무적 지식에는 약하지만 회사에서 분명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해요. 결국 이공계나 상경계같은 실용학문은 아이디어와 통찰력을 어디서 얻어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했거든요.” 경영학과 학생 김상현 씨의 의견이다. “제품에 인문학을 부여하여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어야 실용적 목적에 대한 대가 이상의 이윤이 생기죠. 우리나라에는 가치를 부여하는 것의 중요성을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인문대 학생을 따로 선발하는 ‘인문대 전형’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인문대의 취업난을 해결함과 동시에 기업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혈할 수 있는 제도가 될 것이다. 문과계열 채용인원의 10%정도를 ‘인문대 전형’으로 한다면 인문대 학생끼리 경쟁하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겨루어 볼 수 있는 전형과정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적 지식이 있는 면접관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글로벌 IT기업인 구글은 작년 채용인원 6000명 중 5000명을 인문학도로 채용했다. 10%가 많은 수치도 아니다. 기술발전이 가속화된 2012년의 시장은 ‘아이디어’싸움이 될 것이고 인문학의 중요성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인문학은 실용적이지 않은 학문이 아니에요. 같은 제품을 팔아도 인문학적인 가치가 부여된 물건은 훨씬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죠. 인문학을 우대하는 것은 인문학도들을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산업발전을 위한 것이에요.”

총평: 개소리 좀 작작.

1.

글쓴이는 "IT 산업은 아이디어와 통찰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고, 그걸 얻는 방법은 인문학 바깥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이니 인문대 졸업생들에게 취업 기회를 줘야 한다." 고 주장한다. 그런데, 앞에서 설명했듯이 아이디어(혹은 '발상')는 IT 산업의 성공에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도 않고, 심지어 흔하게 굴러다니기까지 한다.

이 사실은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1. 아이디어와 통찰력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물건인가? 중요한 물건이라면 저렇게 흔하게 널려 있지도 않을 것이며, 오히려 중요한 경쟁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똑같은 아이디어로 먼저 나온 엠앤톡 메신저나 마이스페이스가 카카오, 페이스북한테 밀려서 사라졌다.
  2. 이걸 인문학에서만 가르치는 게 맞는가? 의학 지식은 의대에서만 가르치기 때문에 매우 희소하다. 공학 지식도 (수준 차이는 있지만) 공대에서만 가르치기 때문에 꽤나 희소하고, 그렇기 때문에 공대 졸업자들은 이 취업난에도 어느 정도 프리미엄을 받는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꽤나 흔하다.

이쯤 되면 얘네가 이야기하는 '통찰력' 이라는 게 애시당초 뭐 하는 물건인지부터가 불분명해진다. 저렇게 흔하고 가치 없는 거라면 '통찰력' 같은 거창한 이름을 붙이는 것 자체가 형용모순 아닌가? 아마 글쓴이도 모를 거다.

2.

근거가 없는 것을 우겨야 하니까 (잘 알지도 못하는) 해외 사례를 억지로 갖다 붙인다. 글쓴이는 구글이 2012년 전체 채용인원 6000명 중 5000명을 인문학도로 채용했다고 한다. 아마도 한겨레 구 아무개 기자의 2011년 기사 (#1, #2) 를 근거로 한 것 같은데, 이건 2011년에 한 컨퍼런스에서 "내년에 이만큼 뽑을 생각이다." 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지 실제로 그랬다는 얘기가 아니다.

상식적으로 구글 전 직원 수가 5만 3천명 가량 되는데 갑자기 그 10% 가량 되는 인원을 인문학도로 채우고 있다면 전산과 있던 애들이 단체로 관두고 철학과로 몰려갔겠지? 근데 그런 일이 있었나?

참고로 마리사 메이어는 2012년 7월에 야후로 옮겼다. 인문학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야후도 구글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인문학도들을 모셔와야겠지? 근데 그런 일이 있었나? (2)

3.

글쓴이는 이런 빈약한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와서 문과계열 채용인원의 10% 정도를 인문대에 할당하자는 중, 아이디어를 겨루는 전형과정을 만들자는 둥 헛소리를 한다. 이거야말로 순도 100%의 미친 소리다. '아이디어를 겨룰 수 있는 전형과정' 이란 '어떤 아이디어가 더 나은지 우열을 가릴 수 있으며,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시험자'의 존재를 전제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런 게 있나? 그런 게 있다면 그 사람들이 인문대 할당 같은 걸 안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니 저런 주장을 해서는 안 될 것이고, 없다면 당연히 얘기조차 꺼내면 안 되겠지?

실제로 내가 만나 본 적잖은 인문주의자(tm)들은 이러한 현실에 불만이 많은 듯해 보였다. "인문학적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한국사회가 문제다." 그럼 그냥 인문학도를 대우해 주는 실리콘밸리(?)로 가던가, 그 잘난 아이디어와 통찰력으로 직접 사업을 해서 성공하면 될 일이다. 인문학도만이 카카오톡 같은 걸 만들 수 있다며? 그러니까 제 2, 3의 카카오 만들어서 오너 하라는 말이다. 괜히 공돌이들 우글거리는 한국 회사에 아득바득 기어들어오려고 하지 말고. 왜 그렇게 안 하나?

4.

정리하자면, 저 글은 문사철 따위가 왜 쓸모없는지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 공부 몇 년씩 하고도 저런 수준의 사리판단밖에 못 한다고? 인문학 전공자를 뽑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이 글 안에 다 들어 있다.

하여간 '인문학' 은 불태워야 한다. ('Humanitas' Delenda 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