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신화에 대한 신화
- 아래 글은 다음 글의 번역문이다: The Myth About Creation Myths (2007.3.1, Fast Company)
혁신에 대한 이야기들은 서로가 닮은 면이 있다. 헐리우드 액션 어드벤처 영화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얼개가 있다는 이야기다. 다이하드 4와 유튜브의 창업 스토리를 떠올려 보자. 이 두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쥐뿔도 없는 평범한 주인공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유일한 무기로 장대한 삽질 끝에 성공을 거둔다. 적어도 이 점에서 둘은 완전히 동일한 이야기이다. HP를 창업한 휴렛과 팩커드가 그랬고,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즈 잡스와 워즈니악 또한 그러했듯이 말이다 - 아니면 마이클 델이라던지1. 이 이야기들은 언뜻 보기엔 서로 달라 보이지만, 이 기업들의 성공 과정이 "거대한 산업체와 맞서 싸운 개인의 성공담"이라는 전제를 공통적으로 깔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신화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다면 어떨까? 최근 버클리 대학의 연구자 두 사람2이 차고 창업의 신화(Myth of the Garage)를 파헤쳤다. 이들에 따르면, 차고는 외롭고 고독한 개인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극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체로 "그들의 성공은 비범한 생각과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믿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을 이야기하자면, 성공적인 창업자들은 대부분은 「특별한 개인」이 아니며 차라리 「집단적인 창조물」에 가깝다. 다른 연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론이 도출되었다: 벤처 캐피털의 지원을 받는 스타트업의 91%가 창업주들의 이전 직업과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논문의 저자들은 성공적 창업의 공로가 참신함으로 무장한 몇몇 개인들에게만 돌려질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결코 단순한 '개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3
유튜브의 두 창업자, 스티브 첸(Steve Chen)과 채드 헐리(Chad Hurley)를 생각해 보자. 두 사람 다4 온라인 결제 서비스인 페이팔(Paypal)에서 실력을 갈고 닦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 뿐일까? 좀 더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채드 헐리는 페이팔의 최초 직원들 중 한 사람이며 페이팔의 로고를 디자인하기도 한 사람5이다. 최고의 벤처 캐피털들이 유튜브의 창업에서부터 서비스 런칭에 이르는 몇 달 동안 그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자본에서부터 사업 코칭, 인맥에 이르는 모든 것들을 다. 물론, 그리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친구들이 서로 동영상을 돌려 보기 위해서 유튜브를 만들었다."는 쪽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벌써부터 귀에 착 감기는 맛이 있지 않은가?
애플을 창업주,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의 경우는 어떨까? 물론 이 경우에도 차고는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에서 자주 간과되는 것이 하나 있다: 잡스는 창업 전 아타리와 HP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것. 그게 뭐가 중요한가 싶겠지만, 잡스의 아타리 사번이 40번이라는 것67, 그리고 인터뷰에서 HP에서의 경험에 대해 언급한 적8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똑같은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잡스의 동료인 워즈니악도 마찬가지다. 그가 엔지니어로서 일했던 곳,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의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했던 곳이 바로 HP였던 것이다. (결국 HP는 그의 제안을 차버렸지만.)
이제 결론을 내 보자. 기업은 결코 차고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업이 태어나는 곳은, 바로 기업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그들의 성공을 폄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바로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 신화와는 조금 다른 진실을 마주했을 때 그들의 성공이 이전과는 달리 빛이 바래 보인다는 게 사실 진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그만큼 성공 신화가 주는 짜릿함을 갈망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시장 상황에 대한 체계적 논의와 꽉 짜여진 네트워킹에서 태어난 성공적인 스타트업" 흠, 너무 재미가 없어 보이나? 역시 차고가 필요한 것일까? 그럴거면 차라리 이야기를 '잡스와 워즈니악이 차고를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동네 식당에서 가져온 이쑤시개로 말이다.
우리가 이러한 이야기들을 소비하면 소비할수록, 이런 류의 이야기에는 살이 붙는다. 단지 성공에 대한 우리의 환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는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항해해 가면 인도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무도 지구가 둥글다는 그의 이상한 주장을 믿지 않았다. 배가 서쪽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그의 선원들은 곧 배가 악마의 입속으로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겁에 질렸다. 콜럼버스의 탐험대는 선상반란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역사사회학자 James Loewen에 의하면, 흔히 알려져 있는 콜럼버스의 이야기는 그저 신화에 불과하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 탐험대의 배 세 척은 아주 평온한 항해를 했다(선상반란? 그게 뭔가요?). 게다가 콜럼버스가 항해에 나선 이유 또한 금 때문이었지, 뭔가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콜럼버스는 대단한 일을 해냈다. 신세계를 발견해 냈으니까. 하지만 차고에서 출발했다는 창업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 이상의 이야기를 원한다. 우리가 선상반란 모의가 오가는 버전의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건 바로 그것 때문이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결국 그 이야기들은 일을 해낸 극적인 개인들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이것들 가능하게 했던 조직들은 무대 밖으로 치워 버린다. 점진적인 개선 대신 한순간의 아이디어를, 조직적인 지원 대신 그들 앞에 놓여진 장애물만을 과장하면서 말이다. 아마 몇년 안에 유튜브의 성공 신화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크고 아름답게 과장되어 갈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회사를 창업했거나 막 제품을 출시하려 하고 있다면, 차고에 너무 매력을 느끼지 말았으면 한다. 당신이 먼저 창업의 길을 간 선배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일단 직장부터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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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경우엔 차고가 아니라 기숙사 방이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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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o Audia, Chris Rid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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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창업가들은 단순히 얼마 전 퇴사한 사람이 아닌 만큼 '반란군'도 역시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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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츠케이프와 실리콘 그래픽스를 창업한 제임스 클락의 사위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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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아타리는 최초의 가정용 게임기인 아타리 2600을 개발함으로써 콘솔 게임 시장을 창시한 장본인이다. 최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 게임 플랫폼으로 뜨면서 그 빛이 바랜 감이 없지 않지만, 9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아마 패미콤이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며 날밤을 샌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타리는 1976년 타임 워너에 매각되는데, 이로써 창업주인 놀런 부쉬넬은 3천만 달러를 손에 쥐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대기업에 거액에 인수됨으로써 성공적으로 Exit을 한 스타트업들의 선구자격인 셈. 뒤집어 말하면 스티브 잡스는 그런 회사에서 사회 초년생 생활을 했다는 얘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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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잡스는 이 때 아타리에서 게임 기획도 했고 회로 최적화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회로 최적화를 실제로는 워즈니악한테 맡겨 놓고서 도중에 상여금을 가로챘다고(...) 정말이지 잡스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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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배운 것들이 애플을 창업하는 데 있어서 청사진이 되었죠." (2003년 인터뷰) ↩
경영학에서 언급하는 인상적인 성공사례들은 모두 어느 정도 이런 문제를 조금씩 안고 있겠지요. 그런 글을 접할 때마다 이 문제를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글에서 언급하신 논문을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만큼 성공담의 전후 관계를 찬찬히 살펴보는 지혜 또한 필요하겠죠. 답글 감사합니다.
명쾌해 지는 글이네요 ^^
하하, 그 정도로 명쾌한가요 :) 그런데 저는 저 글이 좀 의외였던 게, 상당히 오래 된 글이더라구요.
VentureSquare에 좋은 글을 보다가 요즘 RSS로 등록해 놓고 글을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는데. 성공 신화에 대한 글은 한달 동안 읽었던 RSS 중 최고입니다.
성공에 대한 헛된 희망에 좌절하고 있었는데 그에 대한 답을 주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IBM Life 보고 오신 분이시군요! 반갑습니다. :)
자신의 필요로부터 서비스가 시작되는 루틴을 무시할 수는 없죠.
전체적으로(예전 글을 포함해서) 시스템적인 접근을 선호하시는 듯.
자신의 필요로부터 서비스가 시작되는 루틴을 무시한 적은 없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의미를 읽으셨는지 모르겠군요. 본문에서 소개된 창업자들 대부분이 ‘개인적인 필요’ 에서 사업을 시작했죠. 대표적으로 워즈니악은 컴퓨터가 당연히 개인용이 아니던 시대, 개인용으로 컴퓨터를 만들던 덕후들 중에서 제일 잘나가던 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영감’ 하고 그걸 실제 제품 형태로 만들어내는 ‘구현’ 그리고 이걸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연결시키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죠.
럼펜님/전체적으로 시스템적 접근이라는 의미는 어떻게 읽으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다소 공격적인 논리로 다른분의 블로그에 글을 쓰셨길래, 저도 궁금해서 여러번 읽어보았습니다만.. 쉽게 납득이 어렵네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고어핀드님의 블로그를 본 저는 이런생각이 듭니다 ; 만약 럼펜님께서, 고어핀드님이 더 논리적인 접근 혹은, 가식의 포장을 넘어 그 안의 더 본질을 뜯어보려는 아키텍쳐적인 접근을 – 선호하시는 분이라고 하신다면, 거기에는 동의 할 수있을것 같네요.
개인적인 필요로부터 서비스가 시작되는 루틴을 무시한것도 제 눈엔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제가 눈이 안좋아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ㅜㅜ, 혹시 부가적인 근거를 주실수는 없을까요? 저같은경우에도 일단 회사를 다니면서 참 많이 배웠거든요. 제가 회사를 다니면서, 그리고 협상학을 통해 배운것은 “들어라 ; 듣는자가 압도적으로 강하다.” 입니다. 하지만 저는 럼펜님보다 강해지기 위해서 듣고싶은게 아니에요. 정말 궁금하거든요. 고어핀드님의 글이 혹시, 럼펜님의 트라우마를 건드린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됩니다.
요즘엔 다른 방식의 이야기들도 많다고 하더라구요. 시드,시리즈A,B로 이어지는 VC들의 참여는 보통 그사람의 학벌이나 팀을 많이 보죠. 특히 우리나라는 더 심하구요. 하지만 린스타트업이 유행을 타고, 최근 VC들이 시드펀딩을 거의 안하는게 트렌드가 되면서, 이젠 그것보다 정말 유저데이터 ; 이것은 히트를 치고있는가? 를 얼리스테이지에서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하죠. 그런면에서는 럼펜님의 의견도 어느정도 공감이 갑니다. 왜 그런말을 하셨는지요. 아무튼 저희는 처음엔, “빌어먹을 우리는 왜 여자친구가 안생기지?” 라는 극히 시스템적인 접근법을 취했습니다. 지금은 좀 다르지만요. 우리 셋 모두에게 성 발렌타인의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언리미티드 빠와. 는. 개뿔.
P.S. 제친구의 경우엔 서른이 되어도 파이어볼을 못쓰던데요. 그거 구라에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텍스트큐브에서 작성된 비밀 댓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페이스북처럼 “대학생들이 시작한 쪽”이 훨씬 더 예외적인 케이스일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 페이스북의 창업자들은 기업에서 출발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괴수들이었으니까요.
인용 감사합니다. 다른 글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내용이 너무 좋은걸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래 전부터 블로그 애독자였는데 제 블로그로 찾아와주셨군요. 영광입니다. :)
오. 그래서 그곳에 계신걸까요.. 멋지십니다.
시사하는점이 크네요.
대개의 기록은 깨어지라고 존재하지만,
과거로 부터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그럴 자격도 없을수 있겠죠.
물론, 저희는 “정말” 차고에서 시작했지만요. ㅎ
언제 빅데이터나 텍스트마이닝, 클러스터링, CSS나 FDS에 대해서도 글한번 날려주시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인간한테 먹히는 이야기 구조란 게 워낙에 뻔해서요. 보통 인간들은 현상을 가지고 원인을 분석할 능력이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