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의 전사들 #8 – 궁병 및 기타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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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궁병
에 의하면 고구려 초기에는 활과 화살이 사용되었다고 전하지만, 그보다 후대에 편찬된 에는 쇠뇌와 활이 모두 사용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초기에는 일반 궁병만이 존재했지만 4~5세기경에는 쇠뇌로 무장한 병종이 등장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양자의 무장에 큰 차이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으므로 함께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단, 쇠뇌병은 비싼 병기를 다루는 상당히 고급 병종이므로, 일반 궁병보다 더 좋은 장비를 지급받았을 것이라는 것 정도만 감안해가면서 읽으셔야 할 듯 합니다.
투구 및 깁옷
근접전을 수행하는 것도 아닌 궁병들이 특별히 투구를 지급받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위 벽화에 묘사된 궁병은 투구가 아닌 관을 쓰고 있습니다. 갑옷의 경우 보병의 것과 비슷한 것을 착용하고 있는데, 활을 쏘기 편하게 소매 부분 자체가 없습니다.
주무기 - 합성궁과 쇠뇌
일반 활은 기마궁사와 마찬가지로 합성궁을 사용했습니다. 위 벽화 그림에 묘사된 궁병도 합성궁을 들고 있습니다. 다만, 말 위에서 사용하는 기마궁사의 활보다는 약간 큰 것입니다.
쇠뇌란 석궁이라고도 하며, 활에 발사장치를 장착하여 사거리와 관통력을 높인 무기입니다. 늦어도 중국 춘추시대 후반에 등장했으며 앞서 이야기한 대로 유목 민족의 기병들을 상대하는 데 효과적인 무기였습니다. 각지의 유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 말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고구려의 경우 쇠뇌에 대한 문헌기록이나 유물은 거의 없습니다.
평양시 덕흥리 고분 대행렬도에 쇠뇌를 높이 치켜든 사람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4~5세기에는 쇠뇌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병기를 이 시기부터 대규모로 편제하기 시작했는지 아니면 이전부터 있었던 병종이지만 자료가 남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웃 나라들이 쇠뇌병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 중장기병이나 중장보병을 제압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의 부대는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보조무기 - 직도
앞서 보병의 무장과 마찬가지로, 칼은 궁병의 보조 병기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항상 100% 지급받는 것은 아니었겠죠.
2. 공병대
삼국 시대에 사용된 공성병기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그저 포차나 충차 등의 공성병기를 사용했다는 것 정도를 남아 있는 기록1과 추측으로나마 알 수 있을 뿐인데, 공성병기의 경우 그림으로 남아 있는 자료조차 없기 때문에 정확한 모습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중국의 공성병기와 비슷한 것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중국의 자료들조차도 송나라 시대 이전에 그려진 그림은 없습니다. 삼국 시대 축성법의 발달로 미루어 보아 성문을 부수는 충차 정도는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실제로 신라의 주요 요새 중 하나였던 삼년산성의 성문에는 충차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각종 대비책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3. 군악대
고대 동양의 군사 지휘는 깃발과 군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체계화된 지휘 체계가 있다면 이 군악대는 필수인데, 고구려의 경우 2대 왕인 유리왕이 선비족과의 전쟁(BC 9)에서 북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군악대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안악 3호분 대행렬도에도 군악대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나팔과 북이 가장 중요한 악기였을 것으로 보이지만 여기에는 다른 악기도 묘사되어 있습니다. 특별한 무장을 갖춘 것 같지는 않지만, 기동성을 위해 말을 타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약수리 고분 벽화의 사냥도에는 뿔나팔을 부는 이가 묘사되어 있어, 사냥 및 군사작전에 뿔나팔이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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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下의 기록으로, 661년 장군 뇌음신惱音信이 지휘하는 고구려군이 신라의 북한산성을 공격했을때 포차抛車를 사용하여 돌을 날려 공격했다는 기록. ↩
드디어 군악대까지…
또 감사히 모셔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