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설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1가 요시오카 도장 소속의 검객 70명과 싸운 것은 1604년 1월의 일이었다. 무사시가 요시오카 도장의 당주인 세이쥬로와 덴시치로를 시합에서 베어 죽였기 때문이다. 도장 주인이 연달아 칼 맞아 죽었으니, 문하생들 입장에서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결국 70명이 한꺼번에 무사시 한 사람을 죽이겠다고 덤벼들었다.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싸움이었다. 말이 70이지, 무사시는 염라대왕과의 인터뷰를 예약한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염라대왕을 영접한 것은 무사시가 아니라 덤벼든 70명이었다.

2.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엄청나게 강하다곤 하지만, 무사시도 평범한 인간이다. 목숨 하나에 팔은 둘 뿐이고, 무엇보다 죽는 게 무섭다. 처음엔 무사시도 자기가 특별하다고 착각했다. 그럴 만도 했다. 열 세 살 때 처음으로 어른을 베어죽였고, 그 뒤에도 그를 적대하던 수많은 인간들을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술의 명가인 호조인을 방문했을 때, 무사시는 정말 죽을 뻔한다. 그의 상대였던 인슌이 무지막지하게 강한 상대였던 탓이다. 인슌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던 그는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등을 돌리고 도망가는 추태까지 보인다.

인슌에게 덤볐을 때, 무사시는 자신이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건, 그때까지 무사시 손에 죽은 인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이후, 무사시는 깨달음을 하나 얻는다: "나라고 해서 특별하지 않다. 죽음을 각오하고 온몸을 던질 줄 모르는 한, 결코 최강이 될 수 없다." 역설적이지만, 무사시가 평범을 넘어서기 시작한 건 바로 이때부터다. 그 후 무사시는 뭔가에 씌인 것처럼, 목숨을 건 싸움을 할 상대를 찾아 헤멘다. 마치 죽음과 맞서는 일에 조금이라도 더 익숙해지려는 듯이.

무사시는 강한 자와 겨루기 위해서라면 머나먼 산골짝까지도 찾아간다.

3.

그렇다면 반대쪽은?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배가본드』는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 요시오카 쪽 70명의 생각을 비춘다. "70명이나 되니까 내가 칼을 뽑을 필요도 없겠지..." 문제는 그 생각을 70명이 다 하고 있었던 거다. 나 말고 누군가가 무사시를 베겠지. 그렇게 옆 사람을 쳐다보고, 그 옆 사람은 또 다른 옆 사람을 쳐다보고... 심지어 어떤 친구는 싸움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뭐 먹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기가 죽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뿐만이 아니다. 누군가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70명 중 한 명이 무사시에게 덤벼들어 그를 붙잡자, 무사시는 몸을 놀릴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 때 누군가가 한 명쯤 희생할 셈으로 대차게 달려들었다면 무사시는 바로 황천행 티켓을 끊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질 못했다. 무사시 같은 강자를 죽이려면 희생은 필연인데, 그것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무사시를 죽일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는 이렇게 날아가버렸다.

4.

투신(鬪神). 싸움의 신. 투신(投身). 몸을 던지다.

발음이 같지만 뜻은 다르다. 하지만 내게는, 이 기묘한 우연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둘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조금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검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칼 휘두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인 기술로서의 성격이 탈색된 현대 검도에서도, 입문자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게 하나 있다: "내가 상대방 머리를 칠 때는 나 역시 머리를 맞을 각오를 해야 한2다." 상대방 칼을 걷어내거나 속이는 요령 같은 건 그 다음 얘기다. 죽도 시합이 이 정도일진대, 하물며 진검 대결에서는? 머리 맞을 각오가 아니라 죽을 각오를 하는 수밖에 없다. 피차 목숨을 건 칼부림, 두 번째 기회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칼 휘두르는 기술 따위는 그 다음 문제3다. 이렇게 놓고 보면, 검술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자기 안에 있는 죽음의 공포와 맞서는 일이 된다.

무사시와 요시오카 일문의 차이는 여기서부터 드러난다. 일년 전만 해도, 무사시와 요시오카 일문은 그렇게 실력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 년 사이, 무사시는 목숨을 건 싸움에 여러 번 스스로를 던졌다. 그만큼 죽음의 공포에 맞서는 게 익숙해졌다는 얘기다. 뭐든 익숙해지면 잘 하는 법, 그는 죽음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아낌없이 스스로를 던진다. 상대가 70명이나 되어도 변함이 없이, 한명 한명 마주칠 때마다 온 힘을 다해 베어나갈 뿐이다.

하지만 요시오카 일문은 그러질 못 했다. 그들 역시 일년 동안 나름 수련을 했다. 하지만 죽을 각오도, 누군가를 희생시킬 각오도 해본 적이 없었다. 결과는 명백했다. 무사시가 투신(鬪神)에 이른 비결, 그것은 다름아닌 투신(投身)이었다.

5.

무사시를 비난하는 이들이 많을 게다. 사람 된 도리로 어떻게 70명이나 베어 죽일 수 있느냐면서. 하지만 궁금하다. 온 몸을 던져 치열하게 부딪혀 가야 할 대상이 비단 검술에만 있는 것은 아닐 터, 그들은 대체 어디까지 투신(投身)해 본 것일까. 해 봤다면 저렇게 쉽게 이야기 못할 것이고, 안 해 봤다면 남을 비난할 자격은 애시당초 저들에게 없을 터다.

비단 남들 이야기만은 아니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피와 땀에 범벅이 되어 칼을 휘두르는 무사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내게, 너는 과연 얼마나 치열하게 투신(投身)해 보았느냐며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되풀이해 던지는 것이었다.

투신


  1. 60여 회의 진검 승부에서 전승함으로써 이러한 칭호를 얻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 알려진 검객들 중 최다승으로, 2위인 이토 이토사이[伊藤一刀齊(景久)]의 2배가 넘는다(약 30회). 이토사이는 현대 검도의 칼 잡는 방법을 정립한 일도류[一刀流]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단, 무사시 최강설에 대한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무사시가 결투한 상대 중 유명한 검객은 사사키 코지로 외에는 없기 때문. 따라서 무사시가 실력이 시원찮은 검객들을 베어 넘겨서 승수만 높을 뿐, 실제로는 강하지 않다는 것이 이 반론의 골자다. 그가 검술이 발달했던 에도(지금의 도쿄) 근처로는 온 적이 없다는 점 또한 그의 실력을 의심하는 시각에 신빙성을 더해 준다. 

  2. 사람 팔 길이가 거기서 거기다보니, 사정 거리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려면 머리 하나 이상 키 차이가 나야 한다. 그런데 남녀가 대결하지 않는 이상, 이런 상황 자체가 보기 힘들다. 

  3. 사실, 목숨을 건 싸움을 각오한 쪽이 평소 수련도 열심히 할 테니 칼 휘두르기도 더 잘 휘두를 터다.